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이키델릭 록 (문단 편집) == 상세 == 1960년대 후반 록음악 씬에서 제일 두드러진 음악이었기 때문에 주로 1960년대의 서구 [[서브컬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화 코드로 남아있지만, 그 후로 생겨나는 여러 록 음악 하위장르들의 탄생에 워낙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사이키델릭 록의 유전자는 현대에도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남아 있고 여러 대중음악 속에 그 흔적이 녹아 있다. '사이키델릭'이라는 용어의 기원은 당연히 '환각제 Psychedelic drug'에서 유래했다. 즉 '마치 [[환각제]]를 복용했을 때 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다만 사이키델릭 장르가 [[환각제]]와 이렇게 저렇게 연관성이 이야기되며, 특히 처음 등장했던 1960년대 이 장르를 개척한 뮤지션 다수가 실제로 환각제를 사용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이유로 사이키델릭을 두고 '약쟁이들의 음악'으로 일반화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100% 사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당연한 말이지만, '약물을 한 록커가 만든 음악=사이키델릭 록'이 아니다. '안 사이키델릭한' 록의 다른 장르 - 이를테면 한 때 '히피 극혐'이 모토였던 펑크를 포함해서 - 는 물론이고, 힙합이든 심지어 재즈나 일반 팝 장르에서도 약물을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그로 인해 죽기까지 한 뮤지션도 여럿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음악을 다 '사이키델릭'이라 부르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 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사이키델릭'이라 불리려면 아티스트가 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상관 없이 "음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어야 한다. 연주하는 사람이 약에 취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사이키델릭 록과 환각제의 관계는 (그렇다고 또 아주 복잡한 것 역시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단순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물론 1960년대에 사이키델릭 음악을 개척한 음악인들 중 다수가 [[마리화나]] 혹은 [[LSD]]등 환각제를 사용했고, 그 경험과 그들이 만들었던 음악 사이에 연관성이 있었던 것은 물론 사실이다. 애초 그게 아니었으면 이 장르의 이름이 '사이키델릭'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이키델릭이 그저 환각제의 경험을 음악으로 옮겼다거나, 아니면 - 좀 과하게 단순화시켜 말하면 - 환각제에 대해 노래하는 (물론 환각제와 환각이 소재인 음악도 실제로 많았지만) '환각제판 권주가' 같은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것이다. 그걸 이해할려면 이를테면 (LSD와 연관해서 중요한 인물인) 심리학자 티머시 리어리 Timothy Leary[* 참고로 이 분은 이후 1980년대에는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 [[가상현실]]등의 가능성에 꽂혀 "퍼스널 컴퓨터는 1990년대의 LSD이다 the PC is the LSD of the 1990s"라고 말하며, 초기 '사이버 문화'의 확산에 앞장서기도 했다. 당시 그가 하고 다니던 강연의 제목이 ' From Psychedelics to Cybernetics' 였다고. 그 과정에서 [[사이버펑크]]의 확산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게임이나 인터넷을 무슨 [[필로폰]] 보듯 [[게임중독법|마약취급 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실물'이든 '바이트'이든 가리지 않고 '약'을 퍼뜨리는, '중독물질 대마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꾸로 1980-90년대의 리어리의 '사이버'에 대한 찬양은 그가 '60년대에 LSD를 예찬하며 했던 주장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하게 해줄 수도 있다. 물론 티머시 리어리 이외에도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실질적으로 '사이키델릭에서 사이버네틱스로' 이행한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작사가 출신으로 이후 인터넷 프라이버시, 정보 투명성과 [[카피레프트]], [[자유 소프트웨어]] 등에 큰 역할을 했던 정보인권 단체 [[전자 프런티어 재단]]의 창립자가 된 페리 발로 John Perry Barlow 같은 인물들도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 역시 인터넷 상 뮤지션 팬덤과 부틀렉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밴드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창시자로 - 본인은 핵심을 가리는 불철저한 것이라 싫어했지만 - [[오픈소스]]의 확산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리처드 스톨먼]] 같은 이들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고 말이다.]나 문화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같은 인물들과 그들의 주장이 당시에 문화에, 특히 청년세대의 서브컬쳐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 여기서 파생된 개념의 하나가 사이키델릭 록 등을 듣다 보면 쉽게 접하게 되는 '''"Mind Expanding"'''같은 개념인 것이다. 약물복용에 의한 환각을 'Trip'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이들은 LSD와 같은 환각제를 기성의 혹은 일상의 고정된 인식과 감각의 틀을 넘어 '정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더 심원하게 혹은 더 높은 차원으로) 의식을 확장시켜주는 보조 수단으로 간주한 것이다. 물론 여기엔 이 즈음까지는 환각제의 위험성, 특히 LSD의 경우[* 비록 LSD가 다른 강한 약물들과 달리 신체적 의존성이나, 복용량에 따른 치사 위험성 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사용시 발생할 수 있는 [[플래시백]]이나 "Bad Trip"의 존재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던 시기였다는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즉 - 그 대부분이 [[히피]] 무브먼트에 참여하거나 공감하던 이들이기도 했던 - 사이키델릭 록의 개척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환각제와 그 체험을 협소하고 인습적인 표현방식과 감성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의 모티브로 여겼던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이키델릭 뮤지션들이 그들의 음악을 창안하는데 있어 환각제와 그 경험은 분명 중요한 모티브였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 음악의 궁극적 목적은 -- 같이 약 빨자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 그들이 환각제가 그것을 도와 줄 수 있다고 여겼던 '더 자유롭고, 더 고양된 인식과 감각' 또는 달리 말하면 '초월적인'[* 알다시피 당시 사이키델릭 장르의 개척자들 다수가 또한 명상 등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의식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음악"으로 말이다. 즉 말하자면 '최고의 이상적인 사이키델릭 음악'은 말하자면 약 없이도 환각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다고 믿었던 상태를 체험하게 또는 도달하게 해 줄 수 있는 '굳이 약도 필요하지 않은' 음악인 셈이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제리 가르시아는 이런 맥락에서 - 약물 체험과 지나치게 연관되어 있는 당시의 사이키델릭 음악 혹은 애시드 록에 대해 다소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 "...'진짜 사이키델릭 록' 같은 건 사실은 없다. 정말로 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게 만들어진 음악은 일부 인도나 티벳 전통 음악뿐이다. there is no real "psychedelic rock" and that it is Indian classical music and some Tibetan music "designed to expand consciousness"..."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약물과 그것을 통한 환각에 대해 당시 사이키델릭 뮤지션들이 가졌던 생각에 대해, 지금와서 맞았느니 틀렸느니 따지는 것은 적어도 음악으로서 사이키델릭 록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 매개 혹은 촉매가 된 것이 무엇이었든 결국 사이키델릭 록은 록 나아가 대중음악 전반의 '음악적 언어'를 일신시켰고, 그 바탕에는 친숙한 하지만 틀에 밖힌 일상적인 감성과 그에 결부된 음악적 관습을 넘어 새로운 수준과 강도의 감흥을 체험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진짜로 '모든 것이 지난 후인 지금에 와서 말하는 것'에 합당한 평가를 한다면 '환각제 체험을 통한 또 다른 의식 상태의 경험'에 대한 당시 사이키델릭 뮤지션들의 견해는 그들에게 그러한 음악적 혁신의 의지를 촉발시킨 촉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덧붙여 사이키델릭 록의 전성기이던 시절에 사용되던 또 다른 표현으로 "[[애시드 록]]"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애시드 록'이 의미가 아주 정확하지는 않은 다소 관용적인 표현이었던 탓에, 애시드 록의 의미와 애시드 록과 사이키델릭 음악 일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여러 설이 있다. '애시드 록'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메스암페타민계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더불어 약물계에 히트친 Lysergic Acid Diethylamide([[LSD]])는 그 이름 중에 acid가 들어가므로 줄여서 애시드라고 부른것에서 유래했다. 물론 개중에는 이를테면 '애시드 록'을 '정말로 약 빨고 만들고 듣는 음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쓴 사람도 있던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일례로 위의 각주에서 소개된 제리 가르시아의 발언에서, 제리 가르시아는 바로 '환각제를 복용하고 만들거나 듣는 음악 = 환각적 체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약의 도움이 필요한 음악'이라는 (즉 발언 전체의 맥락으로 본다면 '약물에 의존하는 좀 낮은 수준의 음악'이라는 다소의 디스가 섞인) 의미로 애시드 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1960년대나 지금이나 꼭 '애시드'라는 이름이 장르에 들어가면 그 장르 뮤지션들이 마약을 했다는 의미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애시드 재즈"를 개척하고 대중에게 확산시킨 공로가 있는 자미로콰이 같은 경우도 '뽕 가는 강렬한 음악'을 한 거지, 자기가 '뽕'을 흡입한 건 아니다. 어쨌거나 '애시드 록'이라는 표현에서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이 표현이 LSD를 비롯한 '애시드'가 섬망을 비롯한 강력한 환각 작용을 불러오는 것과 연관된 표현인 것은 맞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 정말로 이거 빨고 작곡과 연주를 한 뮤지션도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애시드 록을 '진짜로 약빨고 하는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의미로 썼던 것은 아니다. 도리어 보다 일반적인 용법은 그보다는 앞서 말했듯 이 약물들이 불러오는 강렬한 환각효과에 '빗대어' - 당연히 이 때의 비교대상은 마리화나 같은 '마일드한' 약물이다 - 사이키델릭 록의 일부 중, '애시드를 먹은 것처럼 강려크한, 거의 (당시로서는) 쇼크에 가까운 감각을 불러오는 또는 '애시드'를 먹고 심한 환각상태에 빠져 광란을 하는 듯한 음악(역시 당시 기준이지만)을 지칭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애시드 록'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이 주로 개러지 록 계열에 사이키델릭을 결합했지만 당시의 - 말하자면 '러브하고 피스한' 분위기의 - 일반적인 사이키델릭 음악들에 비해 훨씬 더 거칠고 - 또 상대적으로 '단순무식'하고 - 과격한 사운드를 구사하던 밴드들에 대한 표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의 일부가 이후 [[스투지스]], [[MC5]] 등의 "프로토-펑크"(및 경우에 따라 '프로토-메탈'로도 분류되는) 밴드들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간 감이 올 것이다. 그리고 애시드 록이라는 표현은 곧이어 바로 사이키델릭과 블루스 록에 영향 받은 하드록 밴드들의 또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더 분명하게 어떤 표현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즉 (역시 당시의 기준으로) '범 사이키델릭 록' 음악 중, 아주 센 약을 먹고 광란에 빠진 듯한 음악이자, 또한 역시 쎈 약을 먹고 섬망에라도 빠진 듯한 강렬한 느낌을 주는, 즉 사운드가 (역시 당시의 기준으로는 충격적으로) 매우 센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즉 [[지미 헨드릭스]]가 선보인, 당시로서는 거의 SF적인 충격을 줬던 사운드 같은 것이 바로 '애시드 록'인 것이다.--말하자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대체 무슨 엄청 센 마약을 하셨길래 이런 사운드를 내는 거에요?"]] 같은.-- 나아가 한 가지 더 부가되는 의미는, 사이키델릭 록에서 그에 바탕한 하드록 등이 등장하던 시기엔 앞서 말했던 LSD 복용시 'Bad Trip'이나 플래시백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초기 사이키델릭 록은 하드록 등 보다는 포크록 등과 더 접점이 많았고[* 그레이트풀 데드, [[버즈(미국 밴드)|버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이 모두 포크록 밴드이거나 포크록 출신의 밴드들이다.] 당시 히피 문화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러브하고 피스하고 낙관적인' 분위기를 공유했다. 하지만 '애시드 록'이라는 범주로 지칭된 초기 하드록 및 나아가 프로토-메탈, 프로토-펑크 (그리고 일부 초기 프로그레시브 록을 포함해서) 등의 밴드들은 강렬하고 파괴력있는 사운드를 추구했다. 나아가 특히 프로토-펑크 밴드들이 두드러졌지만 (처음부터 히피 무브먼트의 주류와는 좀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녔고, 또한 당연히 베트남 전쟁 장기화와 사회적 갈등의 격화 등등에도 영향 받아) 전반적인 태도 역시 그리 낙관주의적이지 않은 경우도 적잖았다. 즉 사운드 상에서는 분명하게 거칠고 '파괴적인', 그리고 간혹 전반적 정서 역시 어두운 이들 밴드들의 음악을 - '즐거운 환각'이 아니라 - 무시무시한 'Bad Trip' 같은 강렬하고 거친 음악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림]], 지미 헨드릭스 등을 넘어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나아가 심지어 [[블랙 사바스]] 같은 보다 전형적인 하드록 및 초기 메탈 밴드들 역시 '하드록 밴드'이자 또한 '애시드 록 밴드'로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사이키델릭 록의 기류는 1967~8년경에 절정에 달했고, 그 뒤로는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는 점차 사그라들었지만 그 '''음악적 요소들은 [[프로그레시브 록]]과 [[하드 록]], [[글램 록]] 등에 흡수되어 음악적 DNA를 후세에 남기게 된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록이 비운 자리를 보다 단순하고 담백한 '[[루츠 록]]'(Roots Rock)과 [[소프트 록]]이 채우게 되었다. 화려한 사운드보다는 단순한 초기 [[로큰롤]]적인 성향으로 돌아간 루츠 록은, [[밥 딜런]]이 교통사고 이후 어느 한 저택에서 [[더 밴드|자기의 백 밴드]]와 벌인 세션과 컨트리의 영향을 받은 앨범 '[[John Wesley Harding]]'을 낸 것을 그 효시로 보고 있다. 이 루츠 록의 대표주자는 [[CCR]]이다. 이 루츠 록을 시작으로 70년대 [[레너드 스키너드]], 올맨 브라더스 밴드 등이 이끄는 미국적인 락 음악이 시작되었다. 이들이 보여준 투박하지만 진솔한 느낌의 미국적인 아메리칸 록은 1970년대 초중반에 불어닥친 제 2차 브리티쉬 인베이전 영국 밴드들의 엄청난 인기와 위세에 대항할 수 있는 미국의 록 음악이라는 자존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